2016년 11월 18일 금요일

방문자가 있을까 싶지만 혹시 몰라 남깁니다.
walkingnnntalking.blogspot.kr로 블로그를 이사했습니다. 





2016년 4월 7일 목요일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







이 책에서 두번째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나한테 위축될 남자라면 애초에 내가 흥미를 느끼지 못할 타입이니까요. "이다.
Beyonce의 Flawless라는 노래에도 삽입될 정도로 화제가 됐던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TED 강연록에 짧은 에세이, 인터뷰를 더해 묶은 책이다. 역자 김명남씨의 말처럼 "어느 나라, 어느 문화, 어느 연령의 사람에게든 일말의 껄끄러운 마음 없이 건네고" 싶은 책. (95페이지 밖에 되지 않아 다 읽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하고 잘할 수 있으므로. 4월이 가기전에 한권의 책이라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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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을 끌었던 부분은 대학원에 처음 글쓰기 강의를 하러 가게 되어 입을 옷을 고르던 에피소드 이다. 저자는 평소에 좋아하는 여성스러운 치마 대신 "아주 남성적이고, 아주 보기 흉한 정장"을 입었다. "진지한 인상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날 그 흉한 정장을 입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확신이 그때도 있었다면, 학생들은 내 수업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나는 더 편안했을 테고, 더 완전하고 더 진실된 나 자신이었을 테니까요. 
 그 후로 나는 내 여성성을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여성스러움을 간직한 나 자신으로서 존중받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럴 만하니까요. 나는 정치와 역사를 좋아하고, 사상에 관해서 훌륭한 논쟁을 벌일 때 가장 행복합니다. 그리고 나는 여성스럽습니다. 여성스러워서 행복합니다. 나는 하이힐을 좋아하고, 립스틱을 바릅니다. 남자에게 받는 칭찬도 여자에게 받는 칭찬도 다 좋지만(솔직히 털어놓자면 스타일 좋은 여자들의 칭찬이 더 기쁘긴 합니다), 가끔은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옷을 입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옷을 좋아하고, 그 옷을 입으면 내 기분이 좋으니까요. "남성의 시선"이 내 삶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바는 대체로 부수적입니다. "






2016년 4월 3일 일요일

2016.04.01 @의정부










의정부 경전철과 첫눈에 사랑에 빠졌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2016년 3월 16일 수요일

최근 나를 괴롭히던 거의 모든 문제들은 꼬마가 남반구에서 돌아오자 일순간에 사라졌다. 일주일만에 평온한 삶에 안착했다. 생각해보면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과하게 술을 마시고, 취하면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아빠와 수면제에 취해 전화를 걸어서는 딸들을 괴롭히고 악담을 퍼붓는 자기연민에 빠진 엄마 사이에서 자란 내가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을리가 없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늘 갖고 있는 큰 두려움 두가지는 엄마처럼 -타인, 특히 남자에게 의존적으로- 살까봐와 아빠같은 - 폭력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남자를 만날까봐였는데. 꼬마가 남반구로 간 이후로 난 술에 엉망으로 취해버리던지 아니면 힘들다고 울고 원망하며 꼬마를 괴롭혔다. 엄마와 아빠가 모두 내 안에 있고 나는 마치 두다리가 잘린 사람처럼 세상을 살아간다. 허리부터 다리가 자라나는 상상을 해본다. 꼬마에게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다. 고맙고 안심이 되는 한편으로 스스로가 한심하다. 스스로 설 것이다.

2016년 3월 14일 월요일

지하철 옆자리에 초등학교 5-6학년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비슷한 자세로 앉아서 델리만쥬를 먹고 있었다. 냄새가 달콤해서 고개를 살짝 돌려 쳐다보았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마 엄마로 추정되는 여성이 여자아이에게 다리를 오므리라는 손짓을 보냈다. 여자아이가 놀라는 기색을 보이며 재빨리 다리를 모았다. 남자아이에게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자세를 고쳐잡았다. 모으고 있던 다리를 편한 만큼 벌려 앉았다. 




2016년 3월 8일 화요일

내 몫의 마음

관계를 위해서는 최소한 두 사람이 필요하다. 두 사람이 있고 그 둘이 관계 맺고 있다고 했을 때에, 두 사람이 그 관계를 위해 쏟는 에너지의 크기가 같을 수는 없다. 이 차이를 인식하면서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지만, 관계라는 것이, 나는 이만큼을 쏟는데 왜 너는 이거 밖에 신경쓰지 않느냐고 할 수도, 나는 이것밖엔 못 주는데 넌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할 수도 없는 문제이다. 제어가능한 영역은 내 에너지까지이고, 더 받고 싶어 괴로운 마음도, 보답하지 못할 호의 때문에 괴로운 것도 자신의 몫이다. 괴로움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그 관계는 갑작스럽게든 서서히든 끊어질 수 밖에 없다. 결국엔 못받아도, 너무 받아도 어떤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면 우리는 각자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랑을 하고 있는 셈이다. 상대에게 불평 말고 걱정도 말고 본인 걱정이나 하잔 말이다. 내 마음만이 철저히 나의 몫이다.